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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지도는 거창읍의 최근 네이버 지도입니다.

 

1960년대에는 죽전만당과 거창초교 사이는 논이었고, 거고 동쪽의 아파트군이 있는 곳 역시 논이었습니다.
거창중 동쪽의 아파트군이 있는 위치는 과수원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며
북쪽에서 흘러온 강과 서쪽에서 흘러온 강이 합쳐지는 곳이기에 그 지역을 합수(合水)라 불렀습니다.

 

O표시한 다리들만 있었고, X표시한 다리들은 그 후에 건설된 것들입니다.
다리 건너 남쪽도 다리를 건너 처음 있는 네거리부터 창남초교 주변까지만 취락이 형성 되어 있었고 그 외에는 논이었습니다.

 

대성고교 전신이 상고이며, 거창산업과학고 전신이 농고입니다.

 

 

오늘은 "학교피습사건"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이 사건을 이야기 하는 것은 특정인의 무용담이나 늘어 놓으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저가 기억하고 있는 당시의 알려지지 않은 몇가지 사실을 소개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동문들께서 많이 들어 오셨던 이야기와 좀 다른 이야기일 수 있고 미쳐 전해 듣지 못한 부분도 있을겁니다.
또 다른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 끼우기 위한 노력으로 보아 주십시요.

 

어떤 사안이든 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화자(話者)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수 있고, 각자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객관적으로 이야기 하려 노력하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실 것 같은 이야기들은 생략하기로 하는데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불가피한 부분은 동문님들이 아시는 이야기도 중복 언급하게 될 것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시기 : 10회가 1학년이던 여름 어느 비 오는 날
습격한 사람들 : 상고학생들과 농고학생들
습격당한 쪽 : 거창고등학교

 

배경

 

4.19학생혁명이 있었던 바로 그 해였습니다.
4.19학생혁명으로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극히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거창고등학교가 거창지역에 깊은 뿌리를 내리기 전이라 할 수 있는 때였습니다.
고 전영창교장선생님이 이끄시는 거고라는 집단은 거창사회의 비주류였다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기독교는 항상 비기독교로부터 부당한 공격(때로는 정당한 공격)을 받아 오기 마련이었기
대다수가 비기독교인 상고 농고의 동문사회 및 거창사회의 무조건적인 거부를 당하고 있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기에 더하여 거창 기독교계로 부터도 이단으로 오해받고 백안시 되던 때였습니다.

 

또 고 전영창교장선생님의 고향이 전라도 무주라, 그 때도 경상도사람들은 전라도사람들에 대해 극히 비 호감적이었습니다.

 

(최근의 사람들은 군사정권이 집권의 한 방편으로 지방색을 고의로 조장했다고들 하나, 그 이야기는 정확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방색은 그 이전, 아마도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심각한 폐단 이었습니다. 전라도지방사람만 차별한 것이 아니라 서북지방(평안도)사람들도 심한 차별을 받았습니다. 전라도든 평안도든 여러 정변에서 역적으로 몰려, 밀려난 사람들, 소위 비주류들의 후손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기 주류에 의해 폄하되고 조작되어, 차별받고 고초를 당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홍경래의난(평북)1811"의 기록에서 서북지방 차별을 읽을 수 있습니다. --- 죄송..이야기가 옆으로 흘렀습니다 ㅎ ㅎ)

 

피습

 

'거고학보'의 기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8회는 3학년이라 학생회 일 일선에서 한 걸음 뒤에 있었고, ( -공부해야지요- )

 

당시의 편집장은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예리한 비판의식을 가진 9회 신(태성?)선배님이셨는데
(아마 9회 신편집장은 후배동문들이 모르는 분 인줄 압니다. 대신 다른 분들은 알아도....)
신편집장이 거고학보에 쓴 가십기사가 상고동문들의 비위를 거슬리게 한 것입니다. 

 

내용은 별로 길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4.19 이전 자유당 일에 간여했고 3,15부정선거에 연루된 *혐의(혐의일 뿐일수도 있습니다 제대로 밝혀진 사실은 없으니까)*가 있는 상고동문이자 그 때 상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어떤 분에 관한 비판적인 글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이 학보의 내용이 외부로 알려진 후 9회 신선배님이 주변의 협박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퍼지더니...어느날 수업중인 학교에 돌맹이들이 날아 들기 시작한 것 입니다.

 

이왕에 곱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거창사회 전체를 부추겨 농고학생들까지 동원된 전 거창사회의 공격을 받은거라 이야기한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으로 들릴지 몰라도.....그 때 거창 기독교계에서도 공격당한 거고의 편에 서지 않았던 걸 기억하면 결코 지나친 비약은 아닙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군중은 몇몇 선동자들에 의해 흥분할 수도 있는 일
지금 생각하니 당시 학교를 공격해 온 상고,농고의 학생들이 결코 불량스러운 학생들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들 나름대로 당연히 학교를 사랑하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저지른 일일테니까요..

 

예나 지금이나 순진한 민중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기만하여 흥분시키는 재주가 많은 무리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울러 그 때가 4.19 직후라 대부분의 학생들은 무슨 일이든 바로잡는 일에 자신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누구보다 먼저 앞장 서려는 생각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 잘 못된 선동과, 잘 못된 판단에 따라 저지른 실수였다는 생각입니다.

또, 당시에는 인터넷 같은 것도 없었는데 상고,농고학생들 중,
한정된 부수만 발행된 거고학보를 직접 읽고 자의로 판단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었을까? 하는 의문도 가져봅니다.

 

학보에 문제가 된 가십을 쓴 신태성선배님의 글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지나친 사회참여의식으로 인한 좀 심한 글"이었다 할 수도 있다는 면이 있습니다.
(그 후 학보일에 참여하신 많은 후배님들이 읽으면 반발하실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모쪼록 이야기의 진의를 이해해 주십시요 초기의 학보일에 참여한 선배가 누구였는지 또 학보사가 누구의 손들을 거쳐 성장해 왔는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반격

 

수업 중 느닷없이 날아든 돌에 몇명의 학생들이 부상 당하고 학교는 한 때 극도의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순간 어느 누구의 지휘를 받아서가 아니라 전교생이 건물 밖으로 피하면서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전에 어떻게 반격하자는 작전을 짤 수 있는 시간도, 여유도 없이 순간적으로 반격이 시작 되었고, 워낙 맹열한 기세로 반격을 가하니 두 학교 학생들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와중에 반격 그룹이 자연히 두개로 나누어 지면서 A그룹은 농고생들의 뒤를 쫓아 읍내로 진출하고, B그룹은 상고생들의 뒤를 쫓아 상고 정문앞과 향교 부근까지 진출했던 것입니다.

 

또 싸움의 양상은 A그룹은 정면에서 맨손(기껏해야 돌맹이)으로 맞서는 식의 정정당당한 방법(정규전?)이었고...B그룹중 일부는 후에도 뒷말이 많았던 방법(게릴라 소탕전?)으로 대응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습니다. 정문옆 작은 창고에서 꺼낸 목총을 들고 도망 간 상고생을 골목 혹은 부근의 밭(콩밭 고구마밭)에서 찾아 두들겨 패는 방법이었다 합니다. 심지어는 여고쪽으로 도망가던 상고생 한 명이 여고 담장에 막혀 그 담장을 넘으려는 순간 목총개머리판으로 후려 치는 등 말입니다. 그 때 사람이 죽는 불상사가 일어 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B 그룹의 싸움 내용은 더 이상 상세히 모르나

저가 따라갔던 A그룹의 싸움의 양상은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 때 A그룹의 선두에 섰던 선배님은 당시 학생회장 8회 권수원선배님을 위시한 선배님들이었습니다.

 

학교 앞에서 읍내로 향하는 논사이의 도로를 따라 내려가 현재의 거창군청 앞길을 거쳐 다리목까지 거침없이 몰아 부치고 나서 다리를 건너려고 시도 했으나 상대편의 투석으로 맞서는 방어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일부 괄괄한 성격의 동문들은 다리 건너가 농고를 불 태우자 고 아우성 치며 급기야 투석전이 시작 되었습니다.

 

당연히 학생회장 권수원선배님이 제일 앞서서 다리 돌파를 시도했고요
처음에 주머니에 넣어 간 돌이 떨어지면 돌아와 강변에서 다시 주운 돌로 재공격을 하고요...

그 때 여학생들도 이 A그룹에 동참했었습니다...남 학생들이 돌 주우려 왔다 갔다 하는 걸 본 여학생들이 급기야 돌줍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때 여학생의 스커트는 무릎아래까지 내려 오는 길이여서 돌을 스커트에 담으면 제법 많이 담을 수 있었습니다. 스커트에 돌을 담다 보니 하얀 속치마는 비에 졌어 허벅지와 엉덩이에 달라 붙고.....그 모습을 보고 주변의 구경꾼들이 "시집도 못 갈 X들"이라 했답니다....그래도 뒤에 보니 모두들 시집 잘가고 아들 딸 잘 낳고...손주들 보고 ㅎ ㅎ......

 

처음부터 선생님들이 만류를 하셨지만 학생들이 워낙 맹열한 기세로 몰려가니 손을 쓰시지 못하시다가, 다리위에서 투석전이 치열할 때 상대 편의 돌 맞을 각오로 학생들 앞을 가로 막고 서신 선생님들이 최호선선생님, 김대현선생님,외 몇 분이셨습니다...

(다리위의 투석전 ....이거 무섭습니다. 조준해서 던진 돌이 타겟을 벗어나도 시멘 다리바닥에서 튀어 올라 그 뒤에 있는 누군가에게 명중합니다.)

 

선생님들의 위험을 무릅쓴 저지에도 불구하고 몇몇 열혈 선배님들은 다리아래의 허리에까지 차는 물을 건너 도강을 시도하다가 집중적으로 돌세례를 받아 부상 당하기도 했고요. 어쨌던 선생님들의 저지에 순종하여, 질서 정연히 대오를 지어 죽전만당으로 돌아와 ▶"지도로 읽는 그 시절 에피소드 -1-"의 도면에서 이야기한 [G]에 도열하고 교장선생님의 당부(아마 폭력은 폭력을 낳으니 자중할 것, 그리고 오른 편 뺨을 맞으면........하는 내용이었다는 생각...)의 말씀을 듣고 전교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교가를 몇번이나 불럿던 기억을 합니다.

 

[혹시 육이오나 베트남참전 무용담을 들었던 기억이 있는 분들이 있을겁니다....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이런일도 겪었고 저런일도 겪었다 라는 식으로 내용이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 일수록 사실은 진실성이 없는 법이지요....ㅎ ㅎ. 저가 그 시절 일들을 너무 많이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취급 당할까 조심 스럽습니다.

만일 이 피습사건에서 정규전(?)과 게릴라소탕전(?)에 모두 참여한 것인양 이야기하는 동문이 있다면 그 건 거짓입니다........] 

 

사후수습

 

세 학교의 학생들 다수가 부상을 당한 것은 당연한 사실...
그 시절에는 여간 많이 다치지 않고는 약도 바르지 않고 자연치유를 기다리던 시절인데도... 거창읍내에 제대로 된 입원실이 있던 단 하나의 병원인 적십자 병원에 각 학교의 학생 상당수(?명 - 처음엔 침상이 없어 복도까지 이용)가 입원치료를 받았습니다.

거고학생 중에서는 8회 권수원선배님이 제일 많이 다친 선배들 중 한 명이었고 상당기간(최소 5개월?)동안 입원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입원한 기간의 후반부의 경우는 치료가 덜 된 문제도 있었겠지만 싸움의 시시비비를 가려 책임을 묻는 과정에 있는 기간이었고, 권선배님이 학생회장으로 제일 앞장 섰던 관계로 "폭력의 주동자" 라는 오해가 있어 경찰의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것을 막기 위해(그 땐 경찰에 잡혀가면 무조건 흠씬 매질부터 당한 후 조사가 시작되던 시절이니까요)일부러 퇴원을 미루었던 점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3학년이라 진학준비에 전념해야 했을 터인데...??.... 혹시 진학에 지장은 없었는지 그 후의 일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 같이 공권력이 무너질대로 무너진 극도로 혼란스럽던 시절이며 거창 전체가 반거고 분위기여서
확실한 주동자 색출이 어려웠고, 따라서 사건의 원인분석도 미흡한채 이 사건은 마무리 되고 말았습니다.
아마 모두 훈방,무혐의 처분으로 말이지요.

 

그리고 4.19로 자유당이 몰락한 후라 하지만 원래부터 존재하던 토착세력의 힘은 막강했으니까요.

 

(권수원선배님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10회에 권선배의 동생인 권'용웅'이라는 저와 비슷한 이름의 동문이 있었고 이 동문과 전교 1,2등을 다투던 동문이 직전총동문회장이던 윤종보 - 연세대학 정외과 졸업 후 신문사 말단 기자로 시작하여 지방 MBC방송 사장으로 은퇴 -  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며, 권선배님의 이름'수원'은 누구나 쉽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서울의 남쪽도시 '수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또 다른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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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주남선목사님과 전영창교장선생님의 뜻

02 ▷공동묘지 - 주남선목사님의 산소

03 ▷잃어버린 고리 하나 : 전영창교장선생님과 뜻을 같이한 그 시절의 선생님들

04 ▷잃어버린 또 하나의 고리 : 그 시절의 선생님들 - 최초의 거고 출신 선생님들

05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 재학중 꼴지를 한 사람

06 ▷1950,60년대의 거고 모습 : 그 시절 에피소드 -1-

07 ▷죽전만당의 빨간지붕학교 : 그 시절 에피소드 -2-

08 ▷최초의 기숙사 : 그 시절 에피소드 -3-

09 ▷학교 피습사건 : 그 시절 에피소드 -4-

10 ▷역사의식을 일깨우신 윤종대선생님 : 그 시절 에피소드 -5-

11 ▷나성순 선생님의 열두폭치마 : 그 시절 에피소드 -6-

12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최호선선생님 : 그 시절 에피소드 -7-

13 ▷공사장의 십장 김대현선생님 : 그 시절 에피소드 -8-

14 ▷유랑극단 영사기사 김성현선생님 : 그 시절 에피소드 -9-

15 ▷직업선택의 십계와 홍종만교감선생님 : 그 시절 에피소드 -10-

엮인글 :

댓글 '10'

신독

2007.09.27 16:16:20
*.168.1.254

이때가 학교간 패싸움(???)의 시초라고 보아야 하나요?
학교간 싸움은 연례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중 하나였다고 들었는데, 60년은 큰 규모의 투석전이었군요.
ㅎㅎㅎ

박정웅

2007.09.27 21:21:23
*.168.1.254

전무후무한 대격전이었지요 ㅎ ㅎ ㅎ

그 때야 저는 군대로치면 이등병(신참)이라 뒷꽁무니에 졸졸 따라다닌 것 밖에 다른 역할은 없었고요 ^ ^.
(돌팔매질도 좁은 다리에서 선봉에 서 있던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지.....)

학교간 패싸움?..(피습사건을 패싸움이라 해야 할 지도 의문이고...??)
개인적으로는 거고를 입학할 때 이미 그런 바닥에서 손(발)씻고 (ㅋㅋ).. 나온 후라 자~알 모릅니다.

그 후로 학교간 학생들의 충돌이 있을까봐 세곳의 학교에서 모두 각별히 감시감독을 했던 것 같고요.

또,
거고든 상고든 농고든 재학생의 상당 수가 거창중학교 출신었기에 개별적으로 만나면
다들 아는 친구들이었다는 생각입니다.
(거창읍에 중학교는 한개, 고등학교는 3개였으니, 그러기에 거고 무용론도 있었습니다. 역삼각형 구조였으니까요)
사건 당일도 거창중학교 출신들은 어느학교 학생이든 별로 적극적이지도 않았고요
따라서 걱정했던 것 보다는 비교적 조용히 그 시기를 넘긴 것 같습니다
물론 거고대 타학교의 반목이 완전히 해소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60년대에 패싸움이 년례적으로 있었다 이야기하는 건 좀 생소하게 들립니다.
그런식으로 후배들에게 이야기하는 동문이 있었나요?
61년 5.16군사혁명 후에는 각 지방경찰서까지 군대가 주둔하여 치안을 장악했기에 그런 건 꿈도 못꾸던 시절이었고요.

참,
기억나는게 있습니다. 4.19학생혁명 후 5.16군사혁명이 발발하기전까지 약 일년 정도의 기간에
학교별로 구분되어 형성된 조직은 아니고 그 때 그 바닥에 두개의 조직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마라푼다-불개미" 또 하나는 "허리케인-폭풍" 그러나 어느학교 학생은 어느 조직에 그런게 아니었고요..
군사혁명이 일어난 후 이 조직들은 와해 된 걸로 압니다.

학교 교칙이 엄격하게 강화된 요인 중 하나가 그런 조직으로부터 학생들을 격리시키기 위함도 있었을 겁니다.

개별적으로는 그런 조직에 가담했던 동문들이 더러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일 그런 조직에 가담한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가차없는 처벌이 있으니까
학교에 와서는 그런 조직의 일원이라 떠벌이지도 못했고요.

사회전반적으로 혼란스러운 때라 학교(선생님)들 만이라도 정신 차려야 했기
요즈음에의 자유스러운 학교 분위기와는 달리 많이 경직된 분위기였다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점은 거고 만이 아니라 농고 상고 역시 엄한 교칙을 적용하고 있었을겁니다.
그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각학교의 교칙들이 많이 완화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교칙이란게 사회현실과 동 떨어져 만들어 지는 게 아니라
사회현실에 따라 강경해 지기도 하고 유연해 지기도 하는 것을.....)

요즈음 죽전만당에 퇴학처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올라와 있는데 (ㅉㅉㅉ)
이 일련의 이야기를 한 후 그 일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기회가 오리라 생각합니다.

4.19학생혁명이 민간봉기의 시작이라는 순기능으로 민주화 대장정의 역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기도 했지만.
극히 일부 학생들 이야기이기는 하나 , 학생들이 고삐 풀린 망가지 같이 날뛰게 하는 역기능도 있었으니까요

후배

2007.09.28 00:31:54
*.168.1.254

언제나 불구경 쌈구경은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당시엔 심각했던 학교피습사건인데 재밌다고해서 죄송)

제가 초등학교 다니던60년대에 거창에서 동네별로 패싸움이 많았던 기억이납니다
굳이 패싸움이라고 나쁜 의미도 있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 다니던 선배 형들 따라다니며//
목검들고 대나무들고 동네간에 전쟁놀이를 많이 했던 기억이납니다
(여름엔 물총들고.겨울엔 연탄재들고 ㅋㅋㅋ)당시에 중고등학교 형들이 얼마나 멋있엇는지 모릅니다

요즘같으면 상상도 할수없는 일이겠지만// 서로 상대방에 치명적인 가해는 가하지 않으면서(조심 조심)
전쟁놀이 하던 추억이 그립습니다^^**

다음글도 계속 기대하겠습니다!!!!!!!!

박정웅

2007.09.28 06:33:09
*.168.1.254

거창에서 지낸 것은 불과 3년3개월인데
신기하게도 다른 어느 곳에 살던 것 보다 더 또렸하게 기억합니다.
(유년기를 보낸 것이 아니라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던" 추억은 없습니다 만)
아마도 자아를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기였기에 저의 머리속에 잘 각인 되어 있나 봅니다.
흔히들 제2의 고향이라는 이야기를 하지요.

저에게는 바로 그런 곳이고
거고는 저의 이성과 감성이 잉태되고 출산된 그런 곳입니다.

바로위 덧글
(거창읍에 중학교는 한개, 고등학교는 3개였으니, 그러기에 거고 무용론도 있었습니다. 역삼각형 구조였으니까요)를
(거창읍에 남자중학교 1개, 여자중학교 1개, 고등학교는 4개-거고,농고,상고,여고-였으니, 그러기에..................)로
고쳐야 정확합니다.

동문

2007.09.28 12:11:54
*.168.1.254

그 당시의 거창농고와 거창고는 비교가 안됐다죠. 지금은 반대라고 해야하는지.. 이런 경우 언젠가부터 좋은 진학률로
학교의 위상을 올려 준 후배들에게 감사하다고 해야하겠죠. 그 얼마 전 부터 그 덕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박정웅

2007.09.28 18:18:20
*.168.1.254

비교할 때 어떤 면을 비교하느냐에 따라 우열이 뒤바뀔 수 있겠지요.

학교역사 : 농고,상고가 단연 앞섰습니다.
학교건물 : 요즈음 말로 쨉도 되지 않았습니다. 농고와 상고는 학교같은 건물이었으니까요.

진 학 율 : 이건 그때도 거고가 앞섰습니다.
10회졸업생중 7,8명이 서울 유명대학, 그리고 수십명이 지방대학에 합격한 반면
농고나, 상고에서는 서울유명대학에 합격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지방대학에 합격한 사람도
거고의 1/3수준으로 기억합니다. 거고는 한 학년 두개 반 뿐인데요 말입니다. -타학교 4,5개반-

졸업 후 대학 진학후 서울소재대학에 재학중인 동문회가 동대문 밖 신설동 어디에서
열린 적이 있었는데 참석자만 4~50여명 이었다는 기억을 합니다. 장소가 신촌이나 혜화동이 아니라
신설동이었던 것은 그곳에 싸구려 자장면집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의 거창농고와 거창고는 비교가 안됐다죠." 라고 하시는 말 '용웅'이나 '종보'가 들으면 엄청 화낼겁니다 ㅎ ㅎ

선생님들의 실력 (젊음과 열정) : 이건 농고, 상고 선생님들에게서 직접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어 한 마디로
우리학교 선생님들이 더 나았다 라 이야기할 수 없어나 한 가지 비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농고, 상고, 여고 선생님들 중에 소위 SKY출신이 몇 분이 계셨느냐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학벌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좀 거시기 한 방법이라 이야기 하기가 거시기 하지만.....ㅎ ㅎ ㅎ)
그 때부터 선생님들의 학벌은 서울의 어느 유명고교의 선생님들의 학벌에 못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고선생들은 모두 연,고,서울대 출신이라는 황당한 이야기가 있기도 했으니까요
(분명 저는 똥통대학을 다녔기에 학벌로 우열을 가리는 사람은 아닙니다.)

선생님의 결원이 생기면 그 때마다 교장선생님이 상경하여 모셔오시곤 했습니다.
졸업 후 서울에 와서 세밀한 내용을 알게 되었는데요
신세계백화점 뒤 남대문시장골목안에 허름한 2층여인숙의 2층의 방 한개가 교장선생님의 단골 숙소로
교사초빙 때 마다 투숙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일간지에 "XX담당교사 초빙"광고 - 1단 10행광고정도 -를 내시고 하루 이틀 기다리시면
당시에는 실업자가 많았으니 엄청 많이 모려오곤 했던 모양입니다....응모자들을 직접 면접하셔서
뽑으셨는데 교장선생님이 투숙하고 계신 허름한 여인숙만 보고 되돌아간 사람의 숫자는 알 수 없고
그 중에서 들어와 면접을 본 사람도 우선은 교장선생님의 꾀재재한 모습을 보고 도망가기 일수거나
근무처가 함양산청 옆의 거창이라는 소리에, 그리고 보수의 열악한 내용에 대부분 도망가기 일수라..
(때로는 젊은 사람에게서 수모를 당하시기도 하시고요...........)

기독교계에서는 거창고등학교는 몰라도 전영창교장선생님은 알고 있었기에 교회 혹은 교계의 인사
그리고 교장선생님의 지인의 소개로 만난 분들에게 교장선생님이 학교를 인수한 취지를 들려주고
고생에 동참할 의사가 있는 분을 모셔 오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교사초빙에 실패를 하고 혼자 돌아오시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수준이하의 교사는 채용 하시지 않으셨던 걸로 압니다.
(영어실력은 좋으신데, 발음을 일본식으로 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오셨는데 불과 몇개월을 버티시지
못하시고 사직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영어선생님들의 발음은 거의 그랬었는데 말입니다,
실력이 대단한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학생들 앞에 잘못서면 학생들이 가르치려 들었어니까요)

"그 당시의 거창농고와 거창고는 비교가 안됐다죠." ?
이런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전해저 오게 그냥 내버려 둔 두분 동문교장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형편 없던 거고학생들의 실력이 자기들이 부임해 온 이후에야 급 성장한 것같이 알게 방치한 것 말입니다.
자신들의 거고학생들의 실력향상에 공헌했고, 그 이전 분들의 공헌(실력이나 열정)은 깔아 뭉개버린 것 말입니다.

허름한 여인숙 2층방에서 만난 전영창교장선생님의 교육이념에 공감하고 좀 더 나은 자리찾기를 포기하고
오셨던 선생님들이시기에 그 분들이 학교역사에서 소외된 걸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 분들의 젊음과 열정을 바친 것을 말입니다.

앞의 어느 글에서 두분 동문교장들은 두분 동문교장의 스승인 그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고 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어 주시면 저의 참 뜻을 이해 하실 수 있을겁니다. (건방진 후배의 잡소리가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을 기억해 내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기억나는 분 한분씩 그 분과 얽힌 에피소드도 올릴 예정입니다.

당시에도 훌륭한 선생님과 똑똑한 학생들이 모여 있던 최고의 학교가 '거창고등학교'입니다.

지금의 거고가 고 전영창교장선생님과 옛날 그 분들의 뜻을 제대로 살려 나가야 영원한 명문으로 살아 남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떤 동문모임에서 지금 거고를 맡아 있는 사람들의 사고와 방법으로는
거고의 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는 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답답합니다.

후배 동문이 된 학생들에게 과연 몇번이나 자신들의 선생님들의 이야기 해 준 적이 있나요
아마도 오로지 고 전영창교장선생님 이야기 만 들려 주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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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2007.09.28 20:34:30
*.168.1.254

선배님, 큰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아직 다 자세하게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대성고교 전신이 상고이며' 라고 하셨는데, 대고가 생길 때에 상고도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거고와 여고가 붙어 있듯이 가까웠습니다.....많은 분들이 기억을 더듬어 협조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정웅

2007.09.28 20:45:45
*.168.1.254

오류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대성고 설립시에 거창에 계셨던 동문들의 기억이 정확 하리라 생각합니다.
11회 12회 13회 14회 15회 16회의 동문들이 저의 글을 읽으시고
더 많은 오류를 지적해 주시기를 정말로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정확한 기록으로 남지 않겠습니까......

감사,감사.

저의 선배님들 중 인터넷을 하실 수 있는 분들의 글 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박정웅

2007.09.29 06:03:38
*.168.1.254

다시 지도를 검토하니 '대성환경정보고'가 있네요 '상고'가 "대성환경정보고'로 되었나 봅니다.

sdfs

2018.11.09 18:30:48
*.159.203.45

The global hair wigs and extension market is calculable to succeed in revenues of over $10 billion by 2023, growing at a CAGR of roughly 11th of September throughout 2017-2023.The growing demand for high-end human-hair extensions and ultra-high-quality artificial wigs across the eu region can produce new opportunities for leading makers within the world market. the rise in per capita financial gain and defrayment power among shoppers can boost the revenues within the market.The report considers this state of affairs of world hair wigs and extension market and its market dynamics for the amount 2018-2023. It covers an in depth summary of varied market growth enablers, restraints, and trends. The study covers each the demand and provide sides of the market. It conjointly profiles and analyzes the leading firms and numerous different outstanding firms operative within the world hair wigs and extension market. Following a better investigate the forthcoming Off-White x Greek deity Air GHB ninety in “Black,” sneakerhead has delivered the sneaker’s initial on-feet imagination. Showcasing the monochrome runner all told its glory, the “Black” shoe clearly retains abundant of constant description as last year’s white edition, mixing suede and mesh pane on the higher with visible sewing and bright yellow and orange accents. The on-foot appearance conjointly provide a peek at minute details, just like the written production code hidden to a lower place a suede articulatio talocruralis flap and lateral aspect tongue tag. that includes identical daring sew pattern adorns the midfoot, associated additional accents arrive via an eccentric tongue tag and tiny orange tab. in fact it wouldn’t extremely be a Vergil sneaker while not fount text, that seems beneath and round the medial swish and on the shoelaces. The shoe is then completed by an easy black midsole and sole. the ultimate famous Off-White x Nike shoes of the year, Abloh’s new 90s square measure incoming at an ideal time, as next year marks the thirtieth day of the classic silhouette. relish a comprehensive gallery of pictures below, and appearance for the Off-White/Nike partnership to continue its growth in 2019 additionally. www.wigsoutlet2u.com and www.sniketing2buy.com is a best choice. human hair wigs full lace wigs lace front wigs cheap human hair wigs cheap synthetic wigs cheap wigs for women cheap bob wigs african american wigs cheap afro wigs cheap cheap full lace wigs cheap curly wigs cheap cosplay wigs cheap wigs for men cheap costume wigs cheap hair extensions -u8F6E-u64AD-u56FE4-61945.jpg HTB1aGnBgbsTMeJjy1zeq6AOCVXa7-99556.jpg nike air max nike air max 90 womens white white roshes mens roshes women cheap air max 90 air max 270 mens nike air max 1 mens cheap nikes online nike sb janoski nike skateboarding shoes nike air force one men nike air force 1 low black huaraches nike huarache women air max 270 air max sale nike air max sale air jordan 4 men---1-1611-28214.jpg aaa---1-8307-9835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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