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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덕 선생님이 살아온 길

 

저는 유상덕 선생님의 거창고등학교 후배이면서 교육운동의 후배요

마음공부의 동지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선생님의 살아온 길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선생님이 걸어오신 길은 여러동지들과 함께하였기에 관련 동지여러분 활동도 소개하면 좋겠는데 그럴 수 없어 아쉬운 마음입니다. 양해바랍니다.

선생님은 1949년 여름 빨치산과 군경 토벌대의 전투가 벌어지던 경남 함양군 안의면 덕유산 자락 용추사 계곡 연촌부락에서 태어났습니다. (부 : 유태문 劉太文, 모 : 조봉달)

그러나 태어난 지 약 한 달 후 마을 이장을 지낸 아버지는 낮에 들일을 하다가 군경에 끌려가 함양읍 근처 당그래산 아래에서 학살됩니다. 집단학살의 구덩이에서 아버지 시신 수습도 하지 못합니다. 이 사건이 국군 5연대의 함양 양민 학살 사건입니다. 그 후 어머니 마져 이별하고 할머니 손에 맡겨져 삼촌댁에서 자라게 됩니다. 배운 사람 명대로 못산다고 할머니가 선생님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사람에 일만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 보다 1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안의중을 나와 고학으로 거창고를 다닙니다. 거창고등학교 전영창 교장선생님의 진리와 정의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한 교육사상과 철학을 흠모하였고 그 이상으로 교장선생님으로 부터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원혜영의원의 부친인 원경선 거창고등학교 이사장님도 선생님을 사랑하여 수배중 선생님을 돌보기도 하였습니다.

1969년 첩첩시골 거창에서 서울대 사대 지리과에 입학 한 후 ‘경암회’에 가입, 농민운동에 관심 가지게 되고 3학년 때 경암회 회장도 역임합니다. 1학년 때부터 도시 빈민과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야학 활동도 합니다.

1971년까지 서울대 사대 학생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하다가 그 해 10월 박정희정권이 위수령을 선포했을 때 ‘전국 대의원 학생회’를 구성하고 명동에서 시위를 계획하다가 이 일로 구속된 후 강제 징집됩니다.

1974년 만기 제대 후 복학하여 채광석, 박부권 등과 ‘야학문제연구회’를 만든 후 서울 지역의 고대, 연대 등의 야학교사들과 야학문제 써클 연합체를 조직합니다

1975년 김상진 열사 추모제 사건(이른바 오둘둘 사건)에 연루되어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6개월의 수배생활 끝에 구속, 1년 6개월의 실형을 살면서 옥중 단식투쟁으로 고문을 당하고 대학에서는 제적됩니다.

1977년 여름 출소 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민중신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야학운동, 기독교 청년운동을 통하여 반유신투쟁을 전개합니다.. 문동환 박사가 설립한 민중교육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야학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하고, 교재도 개발합니다.

1979년 ‘10.26 사태’ 이후 복권, 복학하여 1979년 교회운동권에서 만난 김덕자님과 결혼하여 아들 민준을 낳게 됩니다.

1980년 9월에는 11년만에 졸업, 1980년 9월 서울 신일고 전임강사로 교단에 서게 됨니다. 신일고에서 정교사 발령 제의를 하나 사양하고 교사 조직을 위해 신분보장이 되는 공립 발령을 신청하여 1981년 서울 서초중으로 발령을 받은 수 후 경기고, 성동고에 근무합니다.

1981년 여름부터 교육운동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 결성을 주도하면서, 그 후 5년 동안 주말이면 전국으로 교육운동의 동지를 규합하려 다닙니다. 선생님을 잘 아는 이의 표현에 의하면 교사조직하는 일에 거의 미쳐 있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1983년 겨울, 경기고 재직 당시에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주관한 교과서의 통일정책 분석 작업을 중심적으로 참여한 것이 ‘교과서분석사건’(이른바 상록회사건)으로 남영동 서울시경 대공분실에서 고문수사를 당합니다. 무리한 꿰맞추기 수사에 사건이 유야무야되자 구속은 면하지만 이듬해인 1984년에는 경기고에서 서울 성동고로 강제 전출당합니다.

1984년 겨울, 무크지『민중교육』기획에 참여하고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이 터져 구류와 파면된 후 해직동지들과 함께 교육출판기획실 설립을 주도하고 이 해에 후까야마 마사미츠가 쓴 <교사와 권리> 역서를 펴냅니다

이해에 딸 시원이가 태어납니다.

1986년 5월에는 ‘민주교육실천협의회’ 결성을 주도하여 사무국장 역임. 책 <교육노동운동>을 공저로 펴내고 막심 고리끼의『어머니』번역서를 펴냅니다.

이와 같이 교육운동의 중심에 서 있는 선생님의 활동을 제압하기 위해

군사정권은 선생님을 7월 15일 안기부로 불법 연행하여 온갖 고문 끝에 이른바 ‘이병설 교수 간첩단 사건’에 얽어 넣습니다.

안기부는 유상덕 선생님의 그간의 활동 전부를 ‘간첩 이병설’의 지시를 받아 한 것으로 발표하게 되고 실형 2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합니다.

1987년 6월민주항쟁과 전교협 출범 등을 맞이하면서 옥중에서 저간의 교사운동을 정리, 평가하고 학교 현장에서 교사운동이 가져야 할 교육자의 윤리적 실천목표를 정하여 출소하는 후배를 통해 바깥으로 전달하기도 합니다.

“첫째, 아부하지 말자. 둘째, 돈 받지 말자. 셋째, 때리지 말자. 넷째 공부(연구) 좀 하자. 다섯째,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자.”였습니다.

 

1988년 8월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 후 민교협 공동대표, 전민련 결성 에 참여 하면서 『끝내지 못한 마지막 수업』을 펴냅니다

그 후로도 전교조 결성 배후로 지목되어 2년간의 수배생활을 합니다.

1989년 3월, 한국교육연구소 설립 준비위원장 역할을 하며 연구소 설립을 주도하고 이후 부소장, 소장 등을 역임합니다.

1989년 전교조 결성관계로 조직이 고난을 당할 때 전교조 대외사업국장으로

전교조를 지켜내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1990년 연대사업위원장, 민자당 해체 국민연합 집행위원

1991년 전교조 정책실장 역할을 하면서 강경대 열사 치사 사건 범국민대책회의 정책실장으로 파견되어 일하던 중 구속됩니다.

1993년 현재 한겨례신문에 삶의 내용이 감동스럽게 소개되고 있는 정해숙 전 전교조위원장과 함께 수석부위원장으로 출마하여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일합니다.

1995년 전교조 부위원장 역할 중 미국 코넬대학교 초빙연구원으로 1년간 연구활동을 합니다. 이 해에 『교육개혁과 교육운동의 전망』을 펴냅니다.

1997년 전교조 위원장 선거 출마를 준비했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자 그동안 그야 말로 전심전력, 사력을 다해서 일구고 지켜온 전교조 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용타스님 문하에서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일구기 위한 마음공부를 하게 됩니다. 내적으로 진리를 치열하게 추구하면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교육발전을 위해 활동하게 됩니다.

1998~2001년 대통령 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위원 역할을 하는 중

2000년 3월,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파면된 후 15년 만에 서울 면목고로 복직합니다.

2003~2005년 참여정부시절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2004년 교육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2009년 책『한국교육의 난제, 그 해법을 묻는다』를 공저로 펴냅니다

2010년 책<세계의 명문학교를 가다』를 펴냅니다

2011 현재 까지 서울 경일고 교사(전교조 평조합원),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교육연구소 이사장을 지내다가 2010년 5월 담낭암을 발견, 병을 다스리는 중에 동지인 이우경 선생님의 간청으로 결혼을 하게 됩니다.

8월 15일 정한수 한그릇 떠놓고 식을 올리고 이것을 안 동지들이 10월 9일

조촐한 잔치 자리를 마련하여 두분을 격려합니다.

사랑하는 신부와 아들 딸 그리고 아들의 연인을 생각하면서 웃으면서 말씀하시더군요. “더 이상 생에 미련도 없었는데 아들 민준이 여자친구를 보니 결혼하여 손자도 한번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구나” 하더고요. 그 소박한 꿈도 이루지 못하고 2011년 7월 12일 오후 2시 50분 가족들과 선생님의 친구인 녹색병원 양길승 원장님의 극진한 돌봄 속에서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에서 생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담낭도 간도 훼손되고 폐까지 망가진 상태에서 숨쉬기가 힘들었답니다

그러나 마취제를 맞지 않고 끝까지 고통과 숨길을 지켜보는 가장 위대한 내적 투쟁을 전개하였답니다, 그 와중에도 평정을 잃지 않고 가족과 이세상의 인연을 정리하면서 가족에게 슬픔을 넘어선 인생승리자로서의 자존감을 갖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이 세상에서 승리자로의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도움을 준 가족과 특히 선생님의 아름답고 찬란한 신부인 이우경 선생님에게 유상덕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보냅니다. 승리자 가족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으로 또 앞으로 더욱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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