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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입숟가락

조회 수 39386 추천 수 0 2011.09.19 11:47:39

우리 어머니. 난데없이 감자 캐러 가자신다. 감자가 드시고 싶은게로구나. 아니, 또 몰라. 속 마음에 다른 뜻이 있는지도 모르지. 다시 물을 수 밖엔. 어디로 언제 갈 거냐고 물어 볼 수 밖엔.

 

"어제 심었는데 아직도 감자 안 캐냐? 비 오는데 감자 캐러 가야지."

 

아. 그렇구나. 어제 심었구나. 비가 오니까 얼른 감자 캐러 가야하는 구나. 나는 감자캐러 간다. 아래채 광으로. 아래채 광에 가서 올망졸망한 감자 상자 속에서 감자를 한 그릇 캐 온다.

 

"아이가! 그다내 캐 오나? 하나도 안 썪었네?"

"내가 글거 줄게. 우리 감자 쌀마 묵자."

 

반색을 하시는 우리 어머니. 싱글벙글이시다.

 

 

 

 "이걸로 오찍 글그란 말이고? 무시 삐지득끼 까까내믄 머글끼 머 인노?"

(이걸로 어떻게 긁나? 무 깎듯이 깎아 내면 먹을 게 뭐가 있나?)

 

우리 어머니. 갖다 드린 과도를 놓고 타박이시다. 감자 껍질을 사과 깎듯이 깎으면 사실 먹을 게 없다. 그럼 어쩌지? 부엌에 있는 껍질 벗기는 전용 칼은 좀 위험한데 어쩌지?

 

"입 숙까락 엄나?"

 

입 숟가락? 입 숟가락? 입 숟가락이 뭐지? 입으로 먹는 숟가락?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숟가락을 갖다 드렸다. 숟가락을 받아 쥔 우리 어머니. 퇴짜다. 가차 없이 퇴짜다. 그렇 줄 알았다.

 

"입 숙까락 엄나?"

"뭐요? 무슨 숟가락요?"

"입 숙까락! 달은 숙까락도 모르나? 입 숙까락 말이다."

 

아. 닳은 숟가락! 그렇지. 옛날에는 다 무쇠 솥을 쓰면서 못 생긴 숟가락으로 누룽지도 긁고 솥도 닦고 때도 밀고 하면서 상현달 처럼 숟가락이 닳아 있었지. 숟가락이 닳아 가면서 닳은 쪽 숟가락이 속으로 파여 들어가서 동그란 감자 표면과 잘 밀착되어 껍질 벗기기에 좋았다. 마치 먹다 남은 호빵 같기도 했었어.

 

 

 

그때 그 시절 떠 올리며 나는 어머니의 입숙까락! 을 만든다. 숟가락 하나를 가져다 그라인드로 갈고 사포로 문지른다. 손에 쥐고 감자 깎는 시늉까지 해 가면서 이 세상에 하나 뿐인 특수 숟가락 하나를 만든다. 혹, 손을 다칠까봐 입숟가락의 날카로운 모퉁이는 무디게 문질러 낸다.

 

곁에는 대야에 물을 떠다놓고 빨갛게 숟가락이 그라인드 위에서 달아 오르면 물속에 넣어 식혀가면서. 작품을 만든다. 적어도 3-40년 이전 기억을 떠 올리면서 복제 해 내는 어머니의 입숟가락.

 

내 첫 작품은 퇴짜였다. 가족이라고 해서 봐 주는 거 없는 엄정하신 우리 어머니의 결론은 퇴짜였다. 다른 거 가져 오라고 하셨다. 부엌 살강에 보면 좋은 게 있다고 하신다. 다시 말해서 반품을 요구하신 것이다.

 

이유는 아주 타당했다. 입숟가락의 닳은 부위가 너무 아래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어머니 엄지 손가락을 자꾸 찔렀다. 두번째 납품은 성공! 대 만족이셨다.

 

"내가 머락카디? 살강 위에 있제?"

 

 

 

껍질만 솔솔 깎아 내는 어머니 입숟가락. 감자 한 번, 입 숟가락 한 번. 그리고 내 얼굴 한번을 번갈아 보시며 배시시 웃는 우리 어머니.

 

 

 

 

기가 막히게 친환경적으로다가 감자를 긁으셨다. 초 절약형. 감자 껍질 까는 부엌용품 어느것 보다 더 알뜰한 감자 까기 도구가 되었다. 우리 어머니 입 숟가락. 감자 손실이 거의 없다. 벌레 먹거나 감자 눈 있는 부위는 입 숟가락 끝으로 파 내 가면서 깎으셨다. 조금씩 남은 감자 껍질은 도리어 감칠맛을 줄 것이다.

 

 

 

 

추석 쇠러 오신 우리 형님과 아들. 어머니 깎은 감자를 갈아 넣고 양파와 쪽파도 넣었다. 그렇게 부친 전이다. 기름기 있는 전을 너무 많이 드시면 우리 어머니 또 탈 날까봐 그만 드시라고 했다. 통하지 않았다. 너무 맛있게 전을 만드신 우리 형님 솜씨 잘못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예 상 밑에 접시를 내려 놓고 우리끼리 먹었다.

 

"와? 이거 내가 글근 감잔데 와 몬 묵고로 카노? 이리 안 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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