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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한 준공식 - 생명살이 뒷간

조회 수 4017 추천 수 86 2008.10.13 08:59:15

 

피마자 또는 아주까리 라고도 한다. 아주까리 가지가 너울너울 춤을 추는 가을날 나는 나만의 조촐한 준공식을 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가 "저기 아주까리 아이가?" 하시면서 왜정 말기에는 전쟁물자 조달에 미쳐 날뛰던 일제가 비행기 기름 한다고 아주까리 기름을 공출해 갔다고 하셨다.

 

동백기름과 같이 머릿기름으로만 쓰이는 줄 알던 내게 준공식 좋은 축사가 되었다. 이 좋은 날. 우리집 뒷간이 완성 된 것이다.

 

 

이토록 훤한 뒷간이라면 똥이 절로 나올 법 하지 않은가? 늘 팬티와 바지 속에서 갑갑해 하던 '그곳'이 공기 맑고 훤한 이곳에서 시원스레 일을 잘 볼 것은 자명 한 일. 아는 사람은 알테지만 좌변기보다 쪼그려 앉는 변기가 훨씬 건강에 좋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요즘 시골에 보급되고 있는 좌변기는 앉아서 볼 일 본다는 것 말고도 대 소변이 분리되지 않고 수세식이라 틀려 먹었다.

 

떡 하니 자리잡고 앉으면 하늘도 보이고 숲도 보이고 저 아래 꼬물꼬물 사람 다니는 것도 보인다. 정면에는 지난 해 여름 동네 모정에서 소리꾼과 함께 동네 할머니들이 춤추며 노는 사진을 걸어놨다. 모정에 앉아서 빙그레 웃고 있는 우리 어머니도 볼 수 있다. 시원스레 똥이 나오는 순간에.

 

왼쪽은 화장지 걸이인데 큼직한 목재를 버팀기둥으로 세우고 주워 와 보관하고 있던 욕실 수건 걸이를 가로질러 놓았다.

 

앞에는 똥 묻은 화장지 담는 바구니와 쌀겨 통이 보인다. 볼 일 보고 나서 쌀겨를 한 주걱 퍼 넣으면 된다.  쌀겨가 똥을 덮게 되니 똥파리가 안 오고 통기가 잘 되니 똥에 있는 호기성 박테리아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여 쌀겨 속 섬유질과 당질, 회질 등과 반응하여 발효가 진행되면서 냄새가 안 난다.

 

오른쪽 옆에는 책을 놔 두는 선반이다. 지금은 책이 세 권이 놓여 있어. 소설가 김곰치선생의 생태산문집하고 '얼쑤 전북' 이라는 전북도청에서 나오는 홍보지. 그리고 '좋은 생각'이라는 월간지다.

 

위의 사진 속 왼쪽 레이어 사진은 똥이 떨어지고 쌀겨가 덮인 모습이고 오른쪽은 오줌이 따로 모여 통에 담기는 모습이다. 혐기성 박테리아가 있는 오줌은 밀폐된 통에서 숙성과정으로 들어간다.

 

곁에 향대를 갖다 놓고 취향에 따라 똥 누는 동안에 향을 피울 수 있게 할 생각이고 본채에 있는 5.1채널 오디오의 스피커 선 하나를 뒷간까지 끌어 와서 맑은 음악이 뒷간에 울려나게 할 계획이다. 안채와 뒷간은 20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말은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뒷간귀신인 '측신(또는 칙신)'은 원래 부엌신인 조왕신의 각시였다. 그런데 조왕신이 바람을 피워 서로 미워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다.

 

주방 옆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는 그래서 불화가 끊이지 않는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벽에도 총총한 별을 보며 뒷간에를 갔다. 예로부터 부지런한 농부는 그날의 날씨를 새벽 일찍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뒷간을 멀찌감치 만들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을 하는데에 제법 오래 걸렸다. 근 한 달. 그림의 위 왼쪽은 공사를 시작 하기 전 모습이고 오른쪽은 완성된 모습이다. 아랫쪽은 목수가 되어 깍고 다듬고 박고 자르고 하는 내 모습.

 

제일 힘든 일은 뒷간 터가 나오질 않아서 지붕을 늘여내는 일이었다. 다른 용도로 만들어져 있는 아랫채에 뒷간을 넣자니 그랬다. 지붕작업을 혼자 하는 게 위험하고도 힘들다. 누가 거들어 주면 좋은데 혼자니까 사다리 위에서 망치라도 떨어뜨리면 다시 내려와서 집어 올려야 되고 못 하나가 안 맞아도 사다리 타고 내려와야 하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도 들지만 그만큼 보람도 크다.

 

수평기로 수평 잡고 수직으로 기둥 맞춰내는 일은 수학적 정교함 뿐 아니라 공간 배치 안목을 두루두루 요구한다. 내부 공간과 구조를 만들면서 몇 번씩 자로 재고 생각을 오래 하게 한 것이 바닥 흙을 얼마나 파 내야 하는가? 바닥 마루는 어느 높이에 설치해야 하나? 창은 어느 높이에 달아야 볼 일 보고 일어 섰을 때 밖에서 안 보이게 되나? 하는 것이었다.

 

풀어 가야 할 숙제를 만나면 어떤 결기가 생기면서 힘이 솟구치니 아직도 내가 젊은가 하고 돌아 보기도 했다.

 

 

일하는 동안 나무향이 참 좋았다. 감촉도.

본채 지을 때 처럼 모든 자재는 다 재활용이었다. 쓰러진 우리 어머니 벌떡 일어나시라는 염원을 담아 여기 저기서 주워 온 자재들로 뒷간을 만드느라 오래 걸렸다. 뒷간 바닥에 깐 이 송판들은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학교 안에 찻집을 짓고 남은 나무들이 있어서 가져 온 것이다. 앞과 옆에 단 창은 고물상에 가서 얻어 온 것.

 

벽채가 다 나무판자인데 여기에 모형을 넣을까 싶다. 에너지를 모아내는 피라밋 모형을 만들어 붙일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템플 기사단의 상징을 만들어 붙일까 싶기도 하다. 역 삼각형과 정삼각형을 겹친 문양.

연자방아나 장독대를 페인트로 그려 넣을까 싶기도 하고.

 

아는 식당에 폐 식용유를  부탁 해 놨다. 송판위에 칠을 하려고 한다. 얇은 피막이 만들어져 비나 햇볕에도 나무가 썩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토치램프로 살짝 그슬려서 숯검정 막을 만들어도 되지만 그러면 나무결은 살아 나지만 연 분홍 나무색이 변해서 안 좋다.

 

 

한참 일을 하고 있을 때 산으로 쏠쏘리 굴밤이랑 야생 오미자 따러 가시던 동네 할머니들이 방 한 칸 새로 들이는 걸로 알고는 우리 어머니 방을 따로 만드냐고 묻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럼 찻집을 만드는 거냐면서 언제 차 얻어 먹으러 와야겠다고 해서 보니 찻집 같은 느낌도 났다.

 

덕유산 등산객 상대로 찻집을 해 볼까? 오늘 준공식은 '생명살이 뒷간'이라는 글씨를 붙이는 것으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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