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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와서 농사 짓고 사실래요?

조회 수 4117 추천 수 53 2009.11.28 21:23:47
 

이맘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 있다. 농사일이 다 끝나고 알곡은 알곡대로 곳간으로 가고, 쭉정이는 아궁이나 거름자리고 들어가고 나면 하게 되는 손님 맞을 채비다. 귀농하겠다는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귀농희망자들의 방문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농사체험 위주의 방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번처럼 귀농준비가 다 된 사람들의 귀농지 탐방을 위한 방문이다. 일반 농가와 달리 나는 비닐집 농사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농한기와 농번기가 뚜렷이 구분된다. 시설농사를 하는 농부들은 농사철이 따로 없다. 사시사철 일속에 파 묻혀 산다.

 

 

밭에서 기념촬영

  

이번에 온 사람들은 모두 스물 한 명이었다. 애들이 두 명 있었는데 이들을 포함해서다.

 

전국 각지에서 온 이들은 정년퇴직을 한 사람도 있었지만 새파란 20대 부부도 있었다. 아예 직장에 사표를 써 놓고 온 사람도 있었다. 각양각색의 사연과 계기를 통해 귀농을 감행하는 이들의 일치점은 딱 하나다. 물질의 포로가 되어 살아가는 도시의 삶을 과감하게 포기하겠다는 의지다.

 

넉넉한 마음을 넉넉한 재산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여성들은 하나같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요. 옷 입성도 수수하고 얼굴들은 해맑다. 한 결 같이 공손하고 삶에 대한 진지함이 말 한마디 한마디에 묻어난다. 종사했던 분야의 전문지식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은 높고 평소의 생활도 생태순환적인 삶이다. 여러 차례 이들을 맞으며 확인하게 되는 사실들이다.

 

이분들의 질문도 다양하다.

 

추수가 끝나서 텅 비어있는 논으로 가서 우렁이를 이용한 자연농법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남의 논인데 비료나 농약을 전혀 안 쓰고 그렇게 땅심을 키운다고 녹비작물 재배해서 거름 만들어 넣으면 언젠가 논 주인이 논을 돌려 달라고 할 때 억울하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나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된다. 그냥 부쳐 먹을 수 있는 날까지 정성을 다해 농사를 지을 생각만 했지 논의 지력이 회복되어 건강한 쌀이 생산 될 때 논을 내 놓으라고 하면 어떻게 할 건지 생각 해 보지 않았다. 아니, 생각 해 보지 않았다기보다 달라면 당연히 줘야 하는 걸로 생각했지 억울한지 어떤지를 생각 해 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억울하고 자시고 할 게 없어 보였다. 내 손을 거친 논이 척박해지기보다 훨씬 걸게 되어 주인에게 돌아간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 싶어 그렇게 대답을 했다. 외국까지 가서 자원봉사도 하는데 내 집에 앉아서 남 좋은 일 좀 하면 어떠랴.

 

 

  
▲ 농사체험 <보따리학교>를 열었던 지난 가을 모습.

 

우리 군의 농업기술센터 소장님을 모시고 지역 농업 현황에 대해 브리핑을 듣고 나서였다. "귀농해서 16년 동안 살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 세 가지만 말해 달라"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세 가지만 말해야 하냐고 되물었더니 사람들이 막 웃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도 하고 법인회사도 운영했던 내가 귀농해서 살면서 어떤 점을 가장 매력적으로 보고 있을까? 그것은 때에 따라 달랐던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자연스레 사는 삶이라고 대답 했던 적이 있고, 노동의 주체가 되어 더 이상 소외된 노동, 예속된 노동을 하지 않고 노동의 전 과정을 내 뜻대로 기획하고 집행하는 창조적 노동이라고 말 한 적도 있다. 지금은 또 다르다. '통합된 삶, 온 누리 삶'을 귀농의 매력이라고 말 할 수 있겠다.

 

공부와 생활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 삶. 노동과 문화, 놀이가 통합되어 있는 삶. 나아가 자녀교육과 이웃관계, 사회활동이 하나가 되어 있는 삶이 어찌 매혹적이지 않으랴.

 

이 모든 이야기는 자연생태농업을 할 때 이야기다. 도시에서 사는 방식을 그대로 시골로 옮겨 놓고 화학농업, 대규모 돈벌이 농사를 할 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이럴 때는 자연과 이웃은 돈벌이 수단이자 대상이 된다. 상호약탈관계로 전락한다.

 

역시 텅 빈 밭으로 가서 고춧대를 뽑을 때였다. 몇 포기 남겨 두었던 야콘도 마저 캐는 시간이었는데 한 질문자가 올해 농사지어서 돈 좀 했냐고 물었다. 다들 초연한 척 했지만 제외시킬 수 없는 귀농희망자들의 관심사항이다.

 

돈 하려고 농사짓는 게 아니고 먹고 쓰고 남은 것을 다른 용품과 교환한다고 대답하면서 중세시대 장원경제체제를 설명했다. 생활의 모든 부문에 걸쳐 자립도를 높여 나가는 내 생활을 소개했다. 나는 건강과 의료, 학습과 식의주 자립도는 매우 높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출 항목 1-2위는 교육비와 직간접 의료비다. 이것을 스스로 해결하니 '돈 되는 농사'에 연연 할 필요가 없다. 돈 벌기 위해 쓰는 돈이 벌이의 65%가 된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 벼베기 낫으로 벼 베기 행사에 왔던 한 가족 세 사람

 

참석자 한 분이 여기 고추는 한 근에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쌀은 10킬로그램에 얼마냐 서리태는 얼마냐 매실효소는 얼마냐고 물었다. 목표 지향적인 삶은 결과에 속박되지만 가치지향적인 삶은 모든 과정 하나하나에서 삶의 희열을 맛본다는 말로 답변을 대신 할 수가 없는 질문들이었다.

 

보통 대여섯 번 이상 농약을 치는 고추를 나는 현미식초와 목초액 등으로만 키웠는데 역병이나 탄저병이 전혀 오지 않았다. 세 번 고추밭을 매 주었고 단오 날 즈음에 채취해서 만든 청초액비로 고추 웃거름을 줬다. 한 근에 2만원씩 받는다고 했더니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쌀도 10킬로그램에 3만 8천원 한다고 했더니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어떤 사람들이 그 비싼 것들을 사느냐고 물었다.

 

내가 하는 농사법을 아는 사람들이 산다고 말했다. 물과 공기를 살리고 땅을 살리는 자연생태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산다고 말했다. 공익의 가치에 투자하는 마음으로 살 것이라고 말했다. 만민의 공공 소유인 공기와 물과 땅을 더럽히면서 자기 돈벌이만 골몰하는 사람들은 엄두 내기 힘들 것이다.

 

부산에서 왔다는 나랑 동갑인 어느 사내는 어떻게 그리 젊어 보이냐고 자기 둘째 동생쯤으로 생각했다면서 비결을 알려 달라고 했다. 도시에 있는 동안 농부의 마음가짐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쿠바처럼 가족단위의 소농과 도시농업을 권장하면 그게 쉽겠지만 지금이라도 베란다 농업, 상자텃밭 같은 귀농운동본부에서 보급하는 도시농업 방식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이들이 돌아가는 날. 몇몇은 고추와 쌀을 사가지고 갔다. 두 배나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이분들은 몇 번을 내게 고맙다고 했다. 이런 농사라면 지어 볼만 하지 않은가. 제 값 받으면서도 고맙다고 인사 받는 농사라면 말이다.

 

시골로 와서 농사짓고 사실래요?

엮인글 :

몇년 후배

2009.12.02 14:29:19
*.189.111.164

선배님 저도 귀농 비슷한걸 해서
처음엔 전업농으로 살았고
요즘엔 반전업농으로 살고 있고
아마도 후내년쯤엔 완전 직업인으로 돌아갈 것 같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시골 와서 살면 살수록 느끼는 건데
완전히 자신을 아니, 자신의 욕심을,
물욕을 없애지 않으면
농사만 짓고 살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땅에 엎드려 김을 멜 땐
그 자체로 즐거워 신이 나지만
다시 현실로 돌아와
삶속으로 들어서면 그게 어렵더군요.

좋아하는 일로
일과 생활을 해결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텐데
그게 어려우니 안타까운 현실인거죠.

암튼 선배님은 그 둘을 동시에 해결하실 수 있으니
어쩌면 복받은 분이신거라 믿습니다^-^.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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