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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만드는 '옛날 곶감'

조회 수 7040 추천 수 49 2009.11.29 07:29:54

우리 집 처마 밑에는 깎아 매달아 놓은 감이 주렁주렁 합니다. 곶감을 만드는 중인데 아마 이렇게 옛날 방식으로 곶감을 만드는 농가가 몇 안 될 것입니다. 직접 꼰 산낵끼줄을 양쪽으로 늘이고 거기에 감을 꿴 대나무를 끼워 걸어 둔 것입니다.

제가 했냐구요?

 

 

아닙니다. 모두 다 어머니가 하신 것입니다. 저는 발판을 놓고 올라 가 처마에 건 일 밖에 없습니다. 제가 추수 하느라 바빠서 감 깎을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불쑥 한 마디 하신 것이 계기가 되어 이리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서리가 곧 올 텐데 감을 서리 맞히면 곶감 못 깡는 기라. 감 장대 각꼬 감부터 따라.”고 하신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곧 심상치 않은 말씀이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어머니가 제 철을 바로 알고 말씀하시기는 먼 옛날 얘기거든요.

 

한 여름에 오돌개(경상도 지방어. 오디) 따러 가자시든지 겨울에 두릅 꺾으러 가자고 떼를 쓰시는 일이 흔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정확하게 감 딸 때를 아시고 하신 말씀이다 보니 이보다 더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50리 길 고향으로 가서 감을 따 왔습니다. 고향 집 감나무는 늙고 부실해서 몇 개 못 따고 외사촌 네서 감을 한 상자 얻어 왔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의 눈부신 활약이 며칠 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십여 년 치매를 앓으시는 분 같지 않게 빈틈없이 일을 해 나갔습니다. 감 상자를 껴 차고 앉아 감 껍질 담을 소쿠리와 깎은 감 모아 둘 채반을 가져 오라 하시더니 산낵끼 꼬게 짚을 추려 오라는가 하면 마른 짚을 그냥 가져 왔다고 야단을 치면서 물을 풍겨 와야 산낵끼를 꼴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깎은 감을 꿸 대나무 다듬어 와라. 손 씻을 물대야 갖다 놔라. 칼 갈아 와라 등등. 어머니는 병사를 다스리는 위엄 있는 지휘관 같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감의 껍질을 단 한 번에 끊어지지 않고 다 깎아 내시더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지시대로 따로 줄을 매서 감 껍질도 널게 되었는데 이때 보니까 감 껍질이 꽈배기처럼 하나로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감 껍질은 잘 말려 시루 떡 해 먹을 때 빻아 넣기도 하고 마른 곶감 사이사이에 넣어 소쿠리에 담아 보관하면 곱게 분이 잘 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잖아도 어머니 기분이 한껏 올라가 계셨는데 여전하신 감 깎는 솜씨를 칭찬했더니 더욱 신바람이 났습니다.

 

“내가 감 잘 깡능닥꼬 불리댕기따 아이가.”

“어디루요?”

“어디긴 어디라. 감 깡는 품마씨 말이지”

 

어머니는 감 껍질 보다 훨씬 긴 옛날이야기를 풀어 놓으셨습니다.

하룻밤에 감 열 접(한 접은 100개)을 깎았다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과장된 걸로 보였지만 하룻밤에 베 네 필을 짰다는 얘기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오늘은 마루 끝으로 나오셔서 “감 꼭다리 안쪽으로 곰팡이 슬지 않게 감을 떼어 놔라.”고 하셔서 햇볕을 잘 쬐일 수 있게 감을 조금씩 벌려 놨습니다.

 

 

요즘 거래되는 새빨갛고 말랑말랑한 곶감은 생태적으로 볼 때 전혀 자연식품이 아닙니다. 곶감을 워낙 대량으로 하다 보니 유황가스를 피워 썩는 것을 방지하고, 감에 들어있는 탄닌 성분의 산화를 막아 곶감의 색깔을 보기 좋게 빨간색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완전 억지춘향입니다. 유황이 타면서 나오는 이산화황은 당연히 몸에 해롭고 곶감에는 이것이 잔류하게 됩니다.

이렇게 만든 곶감도 상온 보관 사나흘이면 거뭇거뭇하게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냉장고에 보관해야 합니다. 뭐든 상품이 되는 순간 본래의 가치는 타락 하는가 봅니다.

 

<대량으로 곶감을 깎는 데서는 이렇게 비좁게 감을 말립니다. 그래서 유황을 피워 안 썩게 합니다.>

 

옛날 방식 그대로 자연 건조하는 우리 집 곶감은 어머니의 소원처럼 수정과도 만들고 설날 제상에도 오를 것입니다. 뽀얗게 분이 난 꼬들꼬들한 곶감을 떠 올리면서 우리 어머니가 내년에도 곶감 많이 깎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웃집으로 곶감 깎으러 불려 댕겼으면 더 좋겠습니다.  ('일멋' 2010.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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