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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란 없고 밥 그릇 싸움만 있을 뿐

조회 수 2958 추천 수 0 2011.05.18 23:00:19
[복지국가를 말한다]그들이 말하지 않는 복지의 진실 4가지
[경향신문] 2011년 05월 18일(수) 오후 10:19   가| 이메일| 프린트
(1) 분배하면 성장이 느려진다? 성장잠재력 잠식은 소득분배 악화 탓 복지와 성장 사이의 관계는 우리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논쟁거리다. 보수진영은 국가 복지를 강화하면 시장경제가 위축돼 성장이 느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분배가 개선돼 내수시장이 튼튼해지기 때문에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복지와 경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방대한 연구결과를 분석한 미 컬럼비아 대학의 이사벨라 메어스 교수는 “나라마다, 시대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일자리 창출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은 각 국가의 기존 제도와 정책”이라는 것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역시 “추상적인 공간을 놓고 논하면 의미가 없다. 한국의 현실을 가지고 논쟁을 벌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제의 구조 속에 국가복지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짚어봐야 한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경제는 구조적 악순환에 직면해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재돌파에 경제성장률 6.2%(2010년) 등 지표는 ‘성장’을 가리키는 반면 성장의 결실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돌아갔는지를 보여주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36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각 가정의 부채증가율(8.9%·2010년)은 소득증가율(5.8%·2010년)을 세 배 남짓 앞지르고 있다. 소득은 거의 늘지 않는데 부채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 부익부 빈익빈은 결국 경제성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소비여력이 없는 국민이 늘면 내수시장이 그만큼 위축되기 때문이다. 백웅기 교수(상명대 부총장)는 “국내총생산(GDP)은 쉽게 말하자면 내수와 수출을 더한 값에서 수입을 뺀 것”이라며 “내수를 이대로 방치하면 GDP 성장률도 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현 정부 안에서조차 “사회 양극화와 중산층 약화가 우리나라 성장잠재력을 위협하고 있다”(곽승준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장)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태의 근본원인은 ‘분배의 고리’가 끊어졌다는 데 있다. 국가는 수출형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면서 ‘선성장 후분배’ 논리를 고수한다. 그렇지만 ‘선성장’한 대기업은 설비투자나 정규직 일자리 창출에 소극적이다. ‘후분배’가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상당한 양의 물이 밑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복지 국가라는 이름의 전기펌프가 필요하다”는 장하준 교수의 처방이 주목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전기펌프’ 기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바닥 수준이다. 조세·복지정책을 통한 소득의 재분배를 통해 스웨덴은 지니계수(국민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54.9%(2000년) 개선했다. 같은 해 미국은 24.6% 개선했다. 하지만 한국은 고작 4.5%(2000년) 개선하는 데 그쳤다. 이 같은 맥락에서 다시 복지·성장 논쟁을 살펴보면 논점은 선명해진다.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 반대론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공짜 복지 시리즈는 다음 세대가 먹고살기 위한 기반까지 잠식해가는 어리석은 일”이라면서 “복지포퓰리즘이 성장잠재력을 잠식하고 있는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 한국에서 성장잠재력을 갉아먹는 것은 오히려 분배되지 않는 구조다. (2) 복지에 돈 쓰면 재정 파탄? 미·일 등 위기 주범은 복지비 아닌 토건·감세
“쓸 돈이 없다.” 국가복지 강화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요 논거다. 나라 곳간의 수장이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언이 대표적이다. 그는 “국가 예산도 투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4대강도 내년 말에 공사가 끝난다. 이런 데 투자하지 않고 복지 같은 데 재원을 다 써버리면 결국 남는 게 별로 없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토목·건설에 예산을 쏟아부어 얻은 결실은 의외로 초라하다. 한국은행의 2005~2010년 산업별 경제성장기여율(전 산업의 부가가치 증가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르면 건설산업의 성장기여율은 5.7% 정도지만 보건복지산업의 성장기여율은 18.6%다. 일자리 창출에서도 같은 10억원을 투자했을 때 건설업에서는 14.3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졌지만 사회서비스 영역은 21.9명의 일자리가 나왔다(2008년 기준). 도로, 공항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은 일단 필요한 만큼 만들고 나면 그 이상은 경제적 쓸모가 크지 않은 탓이다. 반면 노인간병·아동보육 등 사회서비스 부문은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크다. SOC 사업을 통한 경기부양의 실패는 일본에서 입증된 바 있다. 1990년대 부동산 거품 붕괴로 경제위기를 맞은 일본은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였지만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일자리는 0.6% 증가하는 데 그쳤다. 되레 경기침체가 장기화됐다. 유종일 교수는 “특정 산업에 예산을 집중 투자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방식은 한국에서 한계에 달했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 기술혁신으로 성장하려면 누구나 잠재능력을 모색할 수 있도록 분배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처럼 젊은이들이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허덕이거나 취업준비에 매달리는 상태로는 한국의 미래 잠재성장력까지 약화된다는 것이다. 국가가 복지를 강화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효과는 경기의 ‘자동안정화’다. 국가 복지가 강한 유럽에서는 경기침체 시 내수시장이 얼어붙지 않는다. 연금과 실업수당으로 기본 소득이 유지되기 때문에 국민들이 위기상황에 유연해지는 것이다. 실제 삼성경제연구소는 북유럽 국가들이 2009년 세계 경제위기를 가장 안정적으로 극복한 이유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한 경제체질과 안정된 정치·사회시스템 덕분”이라고 꼽았다. 다만 복지 확대의 경제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려면 “막대한 주택대출금, 사교육비 등 가정의 낭비적인 지출 요소를 줄이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홍종학 경원대 교수)는 지적이다. 문제는 정부가 복지를 “즐기는 것”(윤 장관), 즉 낭비로 보고 복지지출을 확대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는 재정건전성을 강조하며 복지국가 해체를 꾀한 미국의 레이거노믹스를 연상시킨다. 당시 보수진영은 흑인이 ‘공짜로 챙기는’ 복지혜택을 부각시킴으로써 보편적 복지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을 유도했다. 하지만 레이건 시대는 심화된 양극화와 하락한 경제성장률로 막을 내렸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미래를 말하다>에서 이 같은 1970년대 미 보수주의가 소수 엘리트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정치적인 수사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재정적자의 뿌리도 레이건이 실시한 부자감세의 영향으로 지적된다. 공공복지지출이 OECD 꼴찌수준인 한국은 당시 미국처럼 기존 복지지출 삭감 처방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복지를 낭비로 몰아감으로써 복지확대 요구를 억누르고 있다. (3) 예산 자연증가로 확대 불필요? 개인에 맡긴 고령화 대책 돌파구는 복지 강화에
지금 한국의 노인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지난해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중 빈곤층의 비율은 한국이 36.2%로 세계 최고다. 빈곤의 영향으로 노인 자살은 최근 10년간 3배 넘게 증가했다. 게다가 한국의 노인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한국은 2026년엔 노인인구가 국민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이 때문에 노인부양을 위한 복지체계 강화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 정부와 보수진영에서는 예산을 이유로 미적거리고 있다. 지금 구조 속에서도 노인복지예산은 급증할 것이기 때문에 미래에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같은 맥락에서 고령화로 인해 다른 영역의 국가복지를 강화할 여력이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령화가 정말 국가 복지를 확대하지 못할 이유가 되는 것일까. 노인의 생활비·의료비는 결국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가야 한다. 보수진영은 그 짐을 지금처럼 가족이 맡아야 한다고 본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해 국회에서 “(노인부양을) 국가와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는 국민의 생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하겠지만, 과연 우리나라의 품격, 전통이나 국가장래를 위해 옳은지 사회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구성원이 연대해 만드는 사회보험으로 노인부양을 부담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이다. ‘효’를 함께 책임지자는 취지로 건강보험, 국가예산, 노인가족이 재원을 공동부담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빠른 안착은 긍정적 신호다. 김찬우 교수(가톨릭대)가 이 요양서비스를 받은 노인의 가족 1000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5.8%가 경제활동의 기회가 증가했고 84.7%는 신체적 부담이, 92%는 심리적 부담이 줄었다고 답했다. 공동부담 과정에서 세금이 더 늘 수는 있지만 미래의 노인부양 금액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는 절약인 셈이다. 이는 ‘각자부담’과 복지원칙에 따른 ‘공동부담’ 간에 어느 쪽을 선택할지 국민들의 활발한 논의가 필요함을 뜻한다. 특히 노인부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경우 그 같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아 문제로 꼽힌다. 정부와 보수진영이 “60년 뒤면 국민연금 적립금이 바닥난다”며 ‘고갈’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김연명 교수는 “이대로라면 2050년 노인비율은 세계 2위인데, GDP 대비 연금지출액은 2005년 OECD 수준만도 못한 상태가 된다”며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이 노인부양책으로 잘 기능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는 것이 더 옳다”고 말했다.
(4) 생산적 복지가 정답? 근로 빈곤층 300만 시대 필요한 건 보편적 복지
“복지가 소비적이기보다 생산적 복지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지난해 12월22일) “복지를 보완해야겠지만 선심성 복지를 피해야 한다.”(4월23일) “일자리 없이 정부의 복지정책으로 몇 푼 갖다 쓰는 것은 삶의 가치를 찾기가 어려운 것.”(지난해 2월19일) 현 정부의 ‘생산적 복지’ ‘능동적 복지’ 논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일자리를 갖도록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생산적 복지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소비적 복지이므로 전자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복지정책이 공공근로 사업인 ‘희망근로 프로젝트’, 보육비 지원대상 확대정책(소득 하위 70%까지), 지난 4·27 재·보선에서 완패한 뒤 전격적으로 내놓은 ‘만 5세 공통과정’ 등이다. 이명박 정부의 생산적 복지론은 영국에서 탄생한 ‘제3의 길’과 얼핏 유사해 보인다. 서구 복지국가들은 그간 실직, 산업재해, 질병 등 이른바 ‘구 사회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복지체계를 갖춰왔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 저출산·고령화와 같은 ‘신 사회위험’ 대비를 위해 기존의 체계를 완화하고 직업훈련, 보육·교육 등 서비스 중심 복지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노동을 해야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의 구축도 그 예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의 현실이다. ‘제3의 길’이 대두된 영국에서는 이미 실직, 산업재해, 질병에 대비한 복지체계가 어느 정도 성숙돼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기본적인 복지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실직과 재해에 무방비 상태인 노동자가 절반에 이르고 (고용보험·산업재해보상보험 사각지대 각각 58.9%, 40.9%) 고용보험 가입자에게 제공되는 실업급여의 수준도 열악하다. 실업급여의 소득대체율이 OECD 회원국 평균 54%지만 한국은 28%다. 실업자 신세가 되는 순간 생활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일을 해도 임금이 중위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근로빈곤층도 300만명에 달한다. 이 때문에 영국의 ‘제3의 길’이나 그와 유사한 사회투자 담론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한국에서는 기본 복지체계를 완비하는 과정을 함께 거쳐야만 한다고 말한다. 김연명 교수(중앙대)는 “어떤 복지국가유형이든 소득보장제도는 복지국가의 기본”이라면서 “이 기본을 무시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복지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는 현 정부처럼 생산적 복지만 강조할 경우 초래되는 결과다. 고려대 고세훈 교수는 “생산적 복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소득보장에 쏟아야 할 재원이 교육·훈련 등 사회투자를 위한 재원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본적 복지체계의 완성에 쓰여야 할 돈은 그만큼 줄어들고 복지의 빈 공간은 방치되는 것이다.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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